A형 백수
[펌] 삼국지 마지막을 장식했던 '사마' 가문 본문
[스크랩] 스압)) 삼국지의 마지막을 장식한 사마씨 가문에 대해 알아보자

작성자:이영애씨작성시간:2018.05.21 조회수: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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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본문에 들어가기전에
보통 연의나 게임으로 알고있는 사마씨 가문의 인물이
사마의, 사마사, 사마소, 사마염, 사마유, 사마주, 사마랑, 사마부인데
여기서 진나라의 뼈대를 이루는 사마의, 사마사, 사마소, 사마염에 대해서만 서술해보려함.
그 조차도 어떻게보면 간략하게
그리고 인물들 한명한명을 설명할지 아니면 그 역사흐름에 맞춰서 설명할지는 잘 모르겠음
그냥 내가 생각하는대로 글 써나갈테니 흐름이 이상해도 이해바람 ㅠ
사마의

(중국드라마 신삼국-사마의)
사마의는 당시 한나라 청류파에서 주목받던 집안 출신임
사마의의 형제들은 사마팔달이라 불리며 이미 당대에도 꽤 이름을 알리던 이들이었음.
당연히 사마의의 명성을 들은 조조는 사마의를 출사시키려하는데 사마의는 이때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음.
꾀병으로 안나가는데 사마의가 멀쩡한걸 사마의집의 시종이 봄. 그리고 사마의의 부인인 장춘화가 시종을 죽여버리는 일도 있음
(사마의 부인도 한성깔 하는인물, 밑에 서술할 기회가 있다면 따로 서술함)
그리고 조조가 사공으로 오른 이후에 다시 사마의를 출사시키려하고, 조조가 사마의가 이번에도 안나온다면 체포해라 해서 사마의가 자진해서 출사함.
조조는 사마의가 음흉하다 생각한건지 꽤 사마의를 견제하는 모습이 정사에도 나옴. 사마의의 능력이 워낙 출중해서 진급은 빨리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조조는 사마의에 대해 어느정도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 덕분에 가축기르는일도 해봤으니.
사마의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자주 나타내기 시작하는건 어느정도 삼국이 정립되어가는 시기야.
유비가 익주를 취하고
조조가 한중을 먹었을때, 조조의 책사인 유엽과 사마의는 이대로 익주로 내려가서 유비를 쳐야된다 했는데 조조는 한중정도면 충분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지.
그리고 유비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한중공방전이 벌어지고, 한중을 잃은 조조가 사마의와 유엽의 말을 듣지 않았던걸 후회하기도 해.
한중공방전이 끝나고 관우가 사망하고 상용의 맹달이 위나라에 항복을 하는데, 제갈량이 남방을 평정하고 위나라로 북벌을 시작하려 할때
제갈량과 이엄은 맹달을 회유해서 다시 맹달을 촉나라로 귀순시키려해.
(여담이지만 맹달이 게임에선 그저그런 외모로 나오지만 실제론 매우 잘생겼다고 함. 그리고 조비가 존나 싸이코 새끼이긴한데 이놈이 남자 외모를 엄청 중요시했다함.
그래서 항장인데도 불구하고 조비가 맹달을 매우 좋아했는데, 조비가 죽고나니 자기 신변이 불안한거야. 상용이면 촉과 경계지역인데다가 자기를 지지하던 황제마저 죽었으니)
상용을 빼앗기면 중요한 거점을 또 하나 읽게되는 셈이고 사마의는 연의에서 나오는 이미지와는 달리 속도전으로 순식간에 상용에 도착해서 맹달의 목을 베어버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제갈량의 북벌이 시작하는데, 보통 연의에서는 1차북벌부터 제갈량과 사마의가 마주쳤다고하나 그건 연의의 내용이고
제갈량의 1, 2차 북벌을 막아낸건 조진이야
(조진이 연의에선 완전 개돼지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유능한 장수였어. 조진 이후 위나라의 대사마를 지냈으니까. 대사마-국방부장관정도로 이해하면 쉬울듯)
제갈량의 1차북벌은 그 유명한 마속의 가정전투 2번째 북벌은 진창에서 학소에게 막힌것이고
이때 사마의는 형주에 있는 완에 있었음.
1차북벌때 사마의가 군사를 움직여 제갈량을 막았단 이야기도 완에 있던 사마의가 그게 가능한가라는 이야기 많아서 대부분 사실로 받아들이진 않아.
3차북벌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제갈량과 사마의의 대결이 이어지는데
사서중에 딱 하나에서 제갈량이 패배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그건 진서라고 진나라역사서인데
이건 신빙성이 너무 떨어지기때문에 촉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인정하지 않는 역사서야.
거기보면 사마의가 노성전투에서 제갈량에게 이겼고 제갈량을 잡기위해 장합이 퇴각하는 촉의 군대를 추격하다가 전사했다고 나오는데
실제로는 사마의는 노성전투에서 제갈량에게 패배했다고 알려진걸 정사로 다들 인정해.
사마의는 늘 제갈량을 상대로 공격보다는 수비적인 입장을 취해. 당연하다면 당연하거지만
병력으로 우수한 입장에서 굳이 밖에서 싸워줄 이유가 없어.
병력이 더 많으면 싸우면 되는거 아냐? 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그냥 성만 지키고 있어도 제갈량은 손가락만 빨다가 돌아가야하니까.
(언덕에 시즈탱크 1부대 박아놨는데 밑에 드라군 10기있다고 굳이 모드풀고 나가서 싸울 필요는 없잖아? 나가도 이기긴하지만 피해가 있을수 있으니)
게다가 쓰촨분지가 그시절뿐만 아니라 지금도 산밖에없는 중국 서쪽에서도 농업생산량이 높은곳이긴 하더라도
하북의 생산량과 익주의 생산량은 비교할 수 없으니까.
천해의 요새인 험준한 산들이 수송하는 입장에서는 최악의 장애물로 다가오는 법이고, 늘 수송, 군량문제로 제갈량은 북벌군을 물렸으니..

(추가로 한중과 장안을 막는 진령산맥이라는 큰 산맥이 있는데 저 기산방향이 진령산맥이 끝나는 지역이야. 그래서 제갈량이 주로 북벌시 이용하려한 루트이기도 함)
제갈량의 4차북벌인데, 1차북벌과 더불어 유일하게 그나마 제갈량이 해볼법한 북벌로 알려져있지.
가운데 하단 동그라미가 한중이고 제갈량은 무도를 거쳐 기산을 넘어 상규지역을 공격하려하고
우측 상단 동그라미 저기가 장안이야. 저기서 사마의는 군을 이끌고 제갈량을 요격하기위해 상규지역으로 진군함.
그리고 위에 언급한 노성에서 사마의는 또다시 농성에 들어가.
매번 제갈량에 대한 전투방식이 수비일변도니까 제하장수들이 사마의 한테
님 왜이리 제갈량 무서워함? 하면서 싸우자고 제촉함.
그래서 사마의는 노성에서 제갈량하고 싸우지만 여기서 패해.
기껏 사마의에게 한번 이겼는데 제갈량에게 뒤통수를 치는게 당시 촉의 2인자인 이엄이야.
군량운송 실패해놓고 제갈량에게 덮어씌우려다가 들키고 천민으로 강등당하지.
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위에 언급한 진서 선제기에는 노성전투에서 사마의가 승리하고 퇴각하는 촉군을 장합이 쫒아가겠다는데 사마의가 안된다 말리는걸
장합이 설득시켜 추격했다가 사망했다고 나오지만
사실은 노성에서 사마의는 패배했고 군량문제로 퇴각하는 촉군을 사마의는 추격하려했지만 장합은 안간다고 한걸 사마의가 억지로 장합을 보냈고
장합은 전사한다는 이게 사실이야.
그리고 제갈량의 육출기산 마지막인 5차북벌(6출기산인데 왜 마지막이 5차북벌이냐면 나머지 하나는 연의에서 나오는 북벌이라 그런거임 실제론 5번출정)

제갈량은 사마의가 안싸워주니 빡쳐서 이번에는 오장원에 그냥 둔전을 해버려.
병사들 풀어서 농사짓게하고 거기 민심장악하고 답답하면 니가와 식으로 전략을 수정해버리는데
제갈량은 이 오장원에서 결국 병사하지.
제갈량의 북벌이 끝나고 한동안 촉, 위간의 대규모 국지전은 발생하지 않음.
그뒤로는 요동에서 반란을 일으킨 공손연을 토벌하는등 군공을 세움.
고평릉 사변
위나라 황제 조예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조방이 황제로 즉위해
조예는 죽기전에 사마의와 조진의 아들인 조상을 불러 조방을 부탁한다는 탁고를 남기고 사망.
위나라의 탁고대신으로 큰 임무를 맡게 된 사마의지만 조상은 사마의의 권력을 실각시키고 명예직인 태부라는 관직만 주고
위나라의 실권을 조상이 장악하지.

(게임상의 조상 일러스트)
조상은 자기아버지 조진만큼 유능하진 못했어
자기와 친한 인물들과 ㄹ혜 순시리에 버금가는 국정농단으로 위나라를 아주 막장상태로 만들어놓지.
사마의는 중풍에 걸렸다는 꾀병을 부리고(꾀병 마스터) 집에 칩거해.
조상의 심복인 이승이란놈이 사마의 상태를 살피러 갔다가 밥조차 못받아먹는 사마의를 보고 사마의는 이제 끝났다 생각하고 조상한테 보고해.
조상은 그걸 철썩같이 믿어버리고 사마의에 대한 경계를 풀어.
(여기서 짚고 넘어갈건, 위의 진서선제기도 그렇지만 사마의를 띄우기위해 조상을 개돼지로 만들어놨을 가능성도 있어.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그리고 황제 조방이 조예가 묻힌 고평릉에 참배하러가고 조상일파는 황제를 따라감.
이 기회를 틈타 사마의는 군사를 움직여서 황태후(조예의 황후)를 압박해 조상을 잡을 조서를 내리게하고
황태후의 명으로 조상을 잡아.
처음에는 조상의 권력만 뺏었지만 후에 반란이라는 죄목을 씌워 조상일파를 아예 몰살시켜버려.
위나라는 대대로 조씨(조인, 조홍, 조휴, 조진)와 하후씨(하후돈)가 군권을 가져왔는데
이 고평릉사변의 과정에서 위나라의 모든 군권을 사마의가 장악하게 되어버려.
신변에 위협을 느낀 하후연의 차남인 하후패가 이때 촉으로 귀순하는 사건도 발생하지.
황제인 조방은 나이가 어리고, 항상 군권을 지녀왔던 조씨 일가의 힘있는 정치인들이 대거 죽거나 실각된 상황에서
위나라의 모든권력은 사마의로 통하게 돼.
마치 헌제를 핍박하고 권력을 손에넣은 조조와 비슷하달까??
권력을 손에넣은 사마의는 251년(제갈량이 사후 17년 뒤)에 사망함.
이제는 사마의의 아들인 사마사, 사마소와 진나라 초대황제인 사마염에 대해 써보려해.
사마사

(게임상의 사마사 일러스트)
사마사는 사마의의 첫째아들로 사마의가 죽고나서 그의 권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사마의의 권력을 물려받긴 했지만 사마사에게는 확실한 명분같은건 좀 부실했어.
여기에 길게 서술은 안하겠지만 오나라의 제갈각이 오나라 역사상 가장많은 대군인 20만을 이끌고 합비에 쳐들어왔다가 개박살나는 전쟁이 발생해
이 전투의 패배로 권력을 잃은 제갈각이 사망하기도하는 사건인데, 이사건을 이후로 사마사의 명분도 확고해지지.
사마사의 권력횡포가 너무 심해지자 위 황제 조방은 자신의 심복인 이풍, 장집, 하후현에게 조서를 내려 사마사를 처단하려 했지만 사전에 발각당해서
이풍, 장집, 하후현은 죽고 조방은 폐위당해. 위 일러스트가 황제는 폐위되셨소라는 걸 나타내는 일러스트라고 해석해.
(하후현은 허리가 잘리는 형을 받고 죽었다고함ㄷㄷ)
사마사는 조방을 폐하고 조모를 황제로 올려.
이 과정에서 사마사의 횡포에 분노한 관구검(고구려를 털었다는 그 관구검 맞음)하고 문흠이 수춘에서 반란을 일으켜.
사마사는 반란을 진압하기위해 수춘으로 향했는데, 문흠의 아들인 문앙이 진짜 미친무예로 사마사의 군대를 헤집어 놓아

(문앙의 게임 일러스트)
그 헤집어놓는게 어땠냐면, 문앙이 혼자 말타고 들어와서 100명을 죽여버려, 근데 이게 한번이 아니라 6번에서 8번가까이 그래버리니
사마사가 매우 놀랐고 그의 눈 밑에 있던 악성종양이 악화되었다고 해.
(야사에서는 문앙의 무예를보고 너무 놀란 사마사의 눈알이 빠져나와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관구검의 반란을 마무리짓고 돌아오는 길에 사마사는 사망해.
이 사마사가 좀 독특한게, 역사서의 평가를 보면 사마사는 사마의가 권력을잡기 한참전부터 위나라를 전복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를 해.
사마사의 부인은 위나라 중신인 하후현의 딸인데, 이 하후현의 딸도 사마사의 야망을 미리 눈치채고 있었고
사마사는 훗날 방해가 될 아내를 독살로 죽여버려.
군권을 비롯한 권력을 가져온건 사마의지만 모든 계획의 시초는 사마사라고 봐도 무방하지.
사마소

(게임상의 사마소 일러스트)
사마사가 죽었는데 후사가 없었기에 그의 권력은 동생인 사마소가 물려받아.
사마의를 시작으로 사마소에 이르러 위나라에서 사마씨일가의 권력은 매우 확고해졌고 이는 사마소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어.
사마소는 황제 조모를 압박해서 형이 가지고있던 대장군직을 그대로 물려받아.
관구검의 난이 일어났던 수춘에서 이번에는 제갈탄이 반란을 일으켜.
제갈탄의 반란을 진압한 이후로 사마씨 일가에게 칼을 들이밀 사람들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지.
사마소는 결국 조조가 공에 올랐던것처럼 황제에게 진공으로 인정받아.
그런데 이 진왕의 지위를 줬지만 위나라 황제였던 조모는 사마소의 권력이 나날히 강해지는걸 눈뜨고 볼 순 없었고
이 사마소를 처단하기 위해 심복이었던 왕경, 왕침, 왕업을 불러 사마소를 칠 계획을 말해.

(게임상의 조모 일러스트)
하지만 왕업, 왕침은 조모의 믿음을 배신하고 사마소에게 모든걸 일러받쳐.
모든 군권을 이미 사마소가 장악한 상태에서 황제인 조모가 움직일 수 있는 군사가 많지 않았어
(그만큼 사마소의 권력이 막대했음)
결국 자기 친위대를 이끌고 사마소를 치려고 하는데 사마소의 심복인 가충이 정예병사들을 이끌고 나타나 조모의 군대를 와해시켜
결국 조모가 스스로 칼을들고 사마소를 죽이려하고, 아무리 사마소의 권력이 강해도
황제를 일반병사가 칼로 찌를 수 없어서 망설이자
가충이 사마소가 모든걸 책임진다는 식으로 병사들을 독려시키고
성제라는 장수가 그대로 조모에게 돌진해서 죽여버려.
대낮에 한 나라의 황제가 시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는 후에 진나라가 망하게 되는 일종의 작은 트리거가 되기도 해.
즉 이렇게 야만적인 행위를 저질렀으니 진나라의 정당성, 명분도 약화되는거니까. 이건 나중에 후술할게.
조모가 시해당하고
진군의 아들이자 번번히 강유의 북벌을 저지했던 진군의 아들 진태와, 사마의의 형제인 사마부만이 눈물을 흘리며
조모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해.
이 과정에서 사마소가 진태를 불러 이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는가 물었고, 진태는 성제말고 가충을 죽여야 한다고 말해.
하지만 사마소는 그것말고 방법이 없는가라고 물었고 진태는 대담하게도 그 외의 방법도 있긴하지만이라며 돌려까기를 시전해.
진태는 조모가 시해된 260년에 죽는데 사마소에 의해 독살된거 아닌가라는 이야기도 있어.
조모를 시해한 사마소는 위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조환을 황제자리에 앉혀.
3년뒤인 263년 정촉군대를 일으켜 촉을 정벌하고 진왕으로 계급이 올라가.
그리고 265년 사마소는 사망해.
사마염

진나라의 초대황제이자 삼국시대를 종결시킨 사마염이야.
사마염은 사마소의 장남으로 역대 모든 중국 초대황제중 가장 나라를 쉽게 먹었다고 평가되는 인물이기도 해.
263년 촉한을 멸망시키고 사마소는 진왕으로 올라서고 265년 사망한 사마소의 뒤를 이어 진왕의 자리를 이어받아.
그리고 2년뒤인 265년에 황제인 조환을 핍박하여 선양을 받아내고 진나라를 건국함.
이 사마염도 초창기에는 매우 현명한 현군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
아마 사마염의 어머니인 왕원희가 청렴한 인물이라 어머니 눈치가 보여서 그랬을거라 생각하지만
그 어머니 왕원희가 죽고난 이후엔 막장가도를 달리게 되지
어느정도였냐면
술병이 심한 신하와 사치가 심한 신하가 있는데
술병이 심한건 문제지만 사치가 심한건 문제가 아니다라는 한 나라의 황제가 저런 개막장적인 발언을 할정도로
게다가 전국에서 여자 1만명을 징발하여 후궁으로 삼는것까지.
이 사마염이 한심했던 신하들도 있었는데
사마염이 어느날 신하한테 나는 어떤 군주인가 물었는데 한나라의 영제와 환제와 비슷하다고 대놓고 직언을 해
(영제와 환제는 한나라의 암군)
그런데 이를 들은 사마염은 나에겐 이렇게 직언을 하는 신하가 있다고 웃으면서 넘겼다고 하니..
이런 막장행보를 달렸지만 이 사마염보다 더욱 더 막장스러운 횡포와 폭정을 휘두르던 오나라의 손호가 있었고
진나라는 280년에 오나라로 대대적인 공세를 퍼붓고 결국 삼국으로 분리되었던 중국대륙을 통일하고 통일왕조를 세워.
팔왕의난, 영가의난, 서진의 몰락
하지만 이 진나라도 오래가지 못해.
우선 후계자부터가 정신병자 취급받는(비꼼, 놀림이 아닌 진짜로 정신병자였을수도 있다고 평가받는) 사마충을 후계자로 세워.
사마염도 사마충이 덜떨어진걸 알고있었는데 이 사마충의 부인인 가남풍(사마소의 심복인 가충의 딸)이 사마충을 후계자로 만들기위해
사마염이 낼 문제를 미리 빼돌려 문관들에게 답을 쓰게하고 사마염은 사마충이 문제가 없겠다며 후계자로 세워.
그리고 호족의 힘을 억제하기위해 사마염은 같은 사마씨 일족에게 군권을 분할해서 줘버려.
그리고 이게 결국 진 멸망의 큰 트리거로 작용하는데
애초에 진나라 정권은 확실한 명분이 존재하지 않던 나라야.
조조는 혼란한 한나라를 그래도 어느정도 규합했다는 명분이야 존재하는데
진나라는 그 과정속에서 백주대낮에 황제를 죽이고 자기들 마음대로 황제를 폐하는 아주 막장스러운 행보를 보였으니
어찌됐건
이 권력을 나눠가진 왕족들이 팔왕의 난을 일으켜 진나라는 아주 개막장상태로 진행되는데 문제는 이를 바로잡아야 할 사마염의 아들인 황제 사마충이
정신지체자에 가까워 중앙에서 아무런 통제가 되질 않아.
결국 각지에서 사마씨 왕족들이 서로 권력을 가지려고 날뛰는데다가 황후인 가남풍마저 권력을 장악하고 미쳐 날뛰니 나라가 건재할리가 없지.

(삼국지 도원결의 카페 펌)
그리고 이 시기에 아예 자연재해라는 자연재해가 엄청나게 일어나게 됌
국가내적으로 백성들을 다스려야할 집단이 단체로 사치와 향락에 빠진데다가 전국적으로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나
이 혼란한 중원을 노리고 각지의 이민족들이 군사를 들고 일어나서 중국 하북, 중원일대로 쳐들어와.
이미 중앙에서 황제의 통제권이 사라진 상태에서 이민족을 제대로 제압할 힘조차 없지.
이 이민족중에 흉노족의 유총이라는 인물이 당시 진나라의 수도였던 낙양을 포위해 낙양 주변은 아주 개박살이나.
그리고 유총은 진나라의 황제 사마치를 잡아가서 노비들이 입는 옷을 입히고 신하들에게 포도주를 따르게 하는등 아주 노예취급을 해
이모습을 본 진나라의 대신들이 눈물을 흘리자 이를 본 유총이 빡쳐서 황제 사마치랑 진나라 대신들을 다죽여버려
그리고 서진의 마지막 황제인 사마업이 장안으로 천도하고 진나라를 이어가지만 이 시기에 진나라의 영향력이 미치는 구역은 장안주변밖에 없을정도로
중국은 한나라 말기때보다 더 심한 혼란기에 접어들어.
그리고 흉노의 유총은 장안으로 쳐들어와서 황제 사마업을 잡아가서 또 노예처럼 부려먹고 나중에 죽여버려
이 유총에 의해 동진왕조가 박살나는 이 과정을 영가의 난이라고 불러
결국 중국의 중원, 화북지역은 이민족들이 판치게되는 혼란기에 접어들고(삼국시대보다 막장스러웠다는 5호 16국시대)
살아남은 강동(오나라의 영토)에 있던 사마예를 황제로 세운 동진이라는 나라로 그 명맥을 이어가
여담으로 위의 사마염의 아버지인 사마소와 이름이 같은 동진의 황제 사마소가
자신의 권신을 불러 사마씨가 진나라를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물었는데
그 권신이 거짓하나없이 고평릉사변으로 조씨 일가를 죽이고 권력을 장악하고
사마사가 조방을 폐한일이나 백주대낮에 황제 조모가 시해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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